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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COSMETICS

화장품의 역사 (History of Cosmetics)

by 봄봄j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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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화장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이후에는 신분이나 계급, 종족을 구별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화장의 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눈을 강조하고 곤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 검 은가루인 코울(kohl)이라는 것을 발랐는데,

눈꺼풀은 초록색, 눈썹과 속눈썹은 검게 칠을 했다고 하고, 벌꿀이나 올리브유에 꽃가루를 섞어서 화장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목욕 후 식물 오일을 발라서 피부를 윤기 있게 가꾸었는데, 이는 현대의 오일 사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후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귀족층 여성을 중심으로 화장의 널리 유행되었다고 하며,

로마 멸망 후 중세 시대에 접어들었을때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화장하는 행위를 죄악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화장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가 되며 알코올증류법이 개발되어 현재의 화장품과 유사한 형태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럽 각국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19세기 말 부터는 점차 수요가 확대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화장품 개발 기술과 다양한 원료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화장품의 사용이 일반화 되게 되었습니다.

이후 현대는 화장품은 일상생활에 있어 필수품이 되었고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Korea)의 화장품 역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에서도 화장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유적 (장신구, 청동거울) 등에서 화장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 고분 벽화를 통해 당시에 연지 화장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얼굴을 희게 보이게 하며 잔주름과 얼굴의 결점을 감추는 목적으로 사용한 백분은, 신라시대때 부터 사용되기 시작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파우더 제품들과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백분의 경우 쌀 가루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흰 피부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신라시대에 백분과 함께 인기가 많았던 제품은 바로 연지입니다.

젊고 혈색 있는 건강한 보습을 나타낼 수 있어 입술, 볼, 이마에 붉은 색깔의 연지를 발랐는데 이는 현대의 립스틱, 블러셔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당시 연지는 홍화와 돼지기름을 혼합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 여성들은 화장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백분은 사용했지만 연지는 사용하지 않고 가느다란 눈썹을 주로 그렸다고 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때 향낭(향주머니)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향수를 뿌리는 현대와 미적 감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조선시대가 되면 상류층과 기생 중심으로 백분, 연지, 화장수, 향낭 등이 사용되었고, 일부 화장품의 경우 중국의 사신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에는 이런 제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갑오경장(1894년) 이후 개화의 물결 영향으로 특수계층들 만의 전유물인 화장품은 드디어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일본으로부터 '화장품'이라는 미용 용어가 흘러 들어왔다고 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가식(거짓 꾸밈), 단장 정도의 용어로 불리었다고 하네요.

 

1916년에는 드디어 '박가분'이라는 상품명의 화장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역사적인 최초의 화장품인 셈이지요.

과거 백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피부에 대한 부착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된 납 성분의 치명적인 독성이 나타나서 인기가 곧 수그러들게 되었고, 이때 화장독이라는 말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네요.
현재 색조화장품의 경우 중금속시험을 반드시 해야하는데, 과거에 비해 많이 안전해지고 사용감도 발전한 것을 새삼 느낍니다.

 

이후 1930년대에는 납을 사용하지 않은 '서가분', '서울분' 등의 백분이 나왔으나 생각만큼 큰 인기는 끌지 못하였고, '크림'이라는 크림도 등장했으며 주로 현대의 방문판매처럼 방문하며 덜어서 판매하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 화장품은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콜드크림, 바니싱 크림, 백분, 머릿기름, 포마드, 헤어토닉, 콜드퍼머약, 향수 등 다양한 제품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화장품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제 조금은 익숙한 명칭들이 나오게 되는 시기이죠. 특히 콜드크림, 바니싱 크림, 포마드는 1960년대까지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특히 콜드크림이라는 명칭은 할머니들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시기도 하니 친숙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마사지크림 정도의 용도를 사용한 크림인데 화장을 지울 때도 사용해서 당시 일명 만능 크림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메이크업 리무버 제품을 기초 목적으로도 사용했다고 하니 굉장히 놀랍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피부를 하얗게만 만드는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을 하는 것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메이크업의 단계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화장수 이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이후 파우더로 마무리하는 단계가 유행합니다. 더불어 과거에 비해 다양한 컬러의 립스틱도 나오며 개인의 개성을 좀 더 표현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이후 1980년이 되면 화장품 개발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천연고분자 보습제인 히알루론산과 립스틱의 천연색소 성분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안티에이징 화장품, 민감성 화장품에 대한 연구 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보습 및 피부유연등이 목적이었다고 화장품에 기능을 추가하게 될 수 있어지게 된 것이지요.

 

1990년대 들어 식물성 성분을 함유한 식물유래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이 유행하였고, 레티놀 성분을 함유한 기능성 화장품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헤어분야에서는 80년대 펌 제품들이 유행이었다면, 90년대에는 컬러링에 대한 유행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현재는 점점더 고도화된 기술이 발달되어 화장품의 안전성, 안정성, 사용성, 유효성 측면에서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고, K-Beauty를 선도하는 국위선양 제품이 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화장품을 공부하고 개발하던 업무를 해온 저에게는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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